회고의 눈물을 흘리며

 언젠가는 간첩으로까지 몰려 우리 집보다 더  큰 방첩부대차가 오질 않나(나중에  알고 보니 모 여학생의 부탁으로 써준 웅변원고가 잘못 이해되어 생긴 소동이었음), 내 시계 내놓으라고 여학생이 집에 찾아오질 않나, 학교에서는 퇴학시킨다고 연락 오고, 학교 가서 망신이란  망신은 다 당하고 돌아오면, 내일 놓을 어머니 겟돈을 들고 도망갔다.
 돌이켜보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남으셨나 싶다.  음악생활 할 때도 노래가 잘 안되면 다음 스테이지고 뭐고 간에 그냥 내려와 돌아다니다가 무대로 돌아가면 경음 악연주로 시간을 때우던 동료들이 펄펄 뛴다.
 다시 무대에 올라 한두 곡 불러봐도 시원치 않으면 막공갈팝송 부르고 욕도 했다.(물론 음악이 시끄러운 때에만), 그런 줄도 모르고 손님들은 즐겁게 춤추고  오예오예 어쩌구 난리통이다. 그래 그래, 다 좋은데 이젠 워쩐다냐. 뭐해서 먹고 살지?
 보초근무를 끝내고 막사로 오르는 오솔길을  걸으며, 지난날 기억들을 더듬던  나는 땀내 절은 작업복에서 M-16소총을 맹 스물두 살, 살아갈 날이 한참 남은 젊은 머슴아로 되돌아왔다.